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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MMA(종합격투기)/MMA 선수들

추억의 K-1, 한국인 K-1 선수들

by 운동하는개인투자자 2020.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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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K-1은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선풍적인 인기였다.
물론 그 인기의 중심에는 최홍만 선수가 있었다. 최홍만 선수를 시작으로
많은 한국선수들이 K-1에 진출했고 한국에서 K-1의 인기는 상상이상 이었다.

오늘은 지금은 사라진 추억의 K-1, 한국인 K-1 선수들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추억의 K-1, 한국인 K-1 선수들

 

먼저 최홍만, K-1 인기의 주역이자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선수였다.
216에 달하는 거대한 키로 서커스매치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피지컬 덕분이긴 하지만 실제로 실력도 출중했고 많은 명경기를 만들어 냈다.

(출처 : K-1 코리아)



2005년, 씨름선수였던 최홍만이 K-1으로 전향했다.
당시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국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고
K-1 진출 이후로도 큰 기술은 없지만 기본기에 충실했고 말도 안되는
신체조건과 힘을 앞세워 밥샙과 정면승부에서 이기는 등 최홍만의
주가는 폭등하여 당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덕분에 한 해 수입이 20억이 넘었고 카드 한도는 한 달 1억이였다고 한다.
그 돈을 다 어디에 버린건지 지금은 그저 생계형 샌드백 신세가 되었지만
분명 당시에는 국민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고있었고 가능성도 있었다.

(출처 : K-1 코리아)



일례로 K-1 슈퍼스타였던 제롬 르 밴너 역시 최홍만과의 시합 이후 최홍만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며 "거인인데다가 바위와 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다.
2년 동안 경험 더 쌓으면 무적될 것." 이라고 한 바 있는데, 이걸 단순하게
립서비스라고 볼 수 없는 것이밴너는 빈말을 하는 성격도 아닐 뿐더러 본국인
프랑스에서의 개인 인터뷰에서도

"정말 아슬아슬했지. 녀석은 거인인데다가 신체는 바위같았어. 그 놈은 곧 무적이 될꺼야."

같은 평가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훗날 최홍만에게 실망하여 돌아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최홍만의 성공적인 진출 후 덩달아서 K-1에 진출한 한국인이 많았다.

(출처 : K-1 코리아)


헤비급의 태권도 선수로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박용수.
최홍만의 진출로 국내에 K-1붐이 일었을 무렵에 
다른 분야의 운동선수들이 격투기로 전향하는 일이 잦았고
박용수 또한 그 중 하나였다. 또 박용수는 태권도를 베이스로
하고있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엄청나게 띄워줬었다.

처음 데뷔하고 나서는 반짝하는 듯 했다.
고만고만한 무명선수 들 상대로 3연승을 거둘 때는
태권브이라는 둥 태권도의 실전성을 입증했다는 듯 했었다.
그러나 박용수는 곧 커다란 장벽 앞에 서게 되는데...

(출처 : K-1 코리아)



앞서 최홍만과 싸웠던 제롬 르 밴너와 싸우게 된 것이다.



제롬 르 밴너

피터 아츠, 마이크 베르나르도, 레미 본야스키, 미르코 크로캅, 어네스트 후스트, 마이크 베르나르도
등의 기라성같은 선수들과 함께 K-1을 대표하던 당대의 하드펀처다. 경기 스타일 자체가 
화끈해서 이겨도 K.O승이고 져도 K.O승인 경우가 많았는데 박용수는 이 사람이랑 싸우게 된 것.
그런데 난 처음부터 박용수에게 불만이 있었다.

(출처 : K-1 )



제롬 르 밴너는 K-1 선수들 중에서도 보디빌더를 연상케 하는 근육질로 유명한 선수였음.
당대의 선수들 중에서 육체적인 면에서 밴너만큼 근육질인 케이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밥샙같은 케이스는 논외로 하고(솔직히 그 정도의 근육은 시합에 불리할 수 있으니까)

(출처 : K-1 코리아)


그런데 박용수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몸이 참..
도대체 프로 파이터의 육체라고 하기가 애매하다.
훗날 격투기 매체 기자 지인분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연습안하는 선수로 유명했고 체육관에서 한번을 볼수가 없었다고...

 

(출처 : K-1 코리아)



또 전략이라고는 발차기 밖에 없다
시합을 운영하려는 건 둘째치고 사용하는 무기가
킥 뿐이다. 그것도 가드를 내리고 킥을 한다.


백스텝 밟으면서 킥만 해대다가 한 방에 K.O 되었다

(출처 : K-1 코리아)



이후 박용수의 밑천은 완전히 거덜나버렸고 경기마다 연전연패를 기록함.

박용수의 경기패턴은 늘 똑같다. 발길질을 해대다가 가드가 뚫려서 K.O당함.
오히려 태권도가 얼마나 실전에 취약한지를 증명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단 박용수 뿐만이 아니라 당시 최홍만을 따라서 격투기에 뛰어든
한국 선수들은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웃음거리, 망신거리가 되었다.
(지금은 최홍만도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이고.)


그리고 대표적인 막장경기 김경석 vs 김민수



진짜 역사에 길이 남을 희대의 막장 매치.
경기 이후 대중들의 비난이 폭발해서 경기를 치른 두 선수들은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했다고 한다.

 

천하장사 출신이였던 이태현 역시 격투기에 진출했다가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태현이 얻어터지는 걸 보고 이만기는 너무 분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참고로 이태현 선수가 진출한 단체는 K-1이 아닌 PRIDE라는 종합격투기 단체다)

이후 격투기 무대를 떠난 이태현은 인터뷰를 통해서 후배들이
격투기한다고 하면 도시락싸들고 따라다니면서 말리겠다고 했다.


사실 격투기 진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여러 매체를 통해 인터뷰를 했는데

"100%의 힘으로 하면 상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라는 오만에 찬 발언을 했었다. 그건 TV로 직접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팀라젠카라는 종합격투기 팀을 본인이 직접 만들어서 훈련했는데
2미터에 가까운 본인이 170남짓되는 코치와 스파링 파트너와 훈련하는걸 보고
그 당시 이태현 선수가 종합격투기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느껴졌다.



최홍만과 함께 모래판의 거인을 군림하며 215라는 거대한 신장을 자랑하던
원조 골리앗 김영현도 격투기 무대에 진출했고 첫 경기로 루슬란 카라에프와 붙었다.



결과는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일반적인 수세에 몰렸고
코가 깨지면서 1라운드 1분도 되지않아 K.O 당했고 이후 은퇴해 버렸다.

K-1은 재밌었지만 그때 한국선수들은....참 그랬었다.
거액의 파이트 머니에 혹해서 진출했다가 참패를 당하고 은퇴하는 선수가 대다수였다.
그래도 그땐 어린 마음에 응원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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