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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에 입덕하다

독립운동의 괴로움 도산 안창호 선생

by 운동하는개인투자자 2020.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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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다.

민족의 실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 활동과 우리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신민회와 대성 학교, 흥사단 등을 세웠다.


이 부분은 많이들 알려지지 않았는데 안창호 선생은 어렸을때 부터 동네에서 미남으로 유명했다.

항상 단정한 머리와 정장으로 댄디한 스타일을 자랑했으며 당시 멀끔한 외모 덕분에 연설이

 더욱더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독립운동 독립투사 도산 안창호



1925년  서대문 형무소에 첫 수감되었다.

단정한 머리스타일과 깔끔한 콧수염, 멋들어진 정장은 여전하다.



독립운동 독립투사 도산 안창호



1932년

7년간 갖은 고문으로 얼굴이 너무 많이 상했다................

실제로 이가 빠져 질긴 음식물을 씹기 힘들었고 시력 또한 안경없으면 보기 힘들정도로 

크게 저하됬었다고 한다.


마치 30년 뒤 모습과도 같다......



독립운동 독립투사 도산 안창호



형무소 출소와 구속이 반복되는 중 1937년 6월 28일,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또다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형무소 수감후 12년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얼굴을 보아 가히 짐작이 가능할 정도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야위고 병들어 가는 안창호 선생의 모습, 마음이 아프다 ㅜㅠ


독립운동 독립투사 도산 안창호



그 해 12월에 동료들의 여러 번에 걸친 탄원 끝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지속되는 고문과 감옥살이로 

인하여 폐렴, 간경화 등 여러 질병을 앓았다. 출소 후,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하였다.


 막대한 치료 비용은 동료 독립운동가들이 지원해주었으나, 병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59세의 일기로 

1938년 3월 10일, 간경화로 별세하였다



“독립운동가의 삶을 기억하는 일,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진 이들을
기억하고 복원하는 일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도산 안창호 선생과 같은 위인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들을 절대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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